Pensées oubliées

자녀를 향한 부모의 두번째 자세_불안함 본문

Letter to 노아

자녀를 향한 부모의 두번째 자세_불안함

Kingdom Builder 2021. 4. 10. 18:10

골로새서 1:10-11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엄청 우울해지는 날이 있어. 그리고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할때가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울한 이유를 나에게서 찾게 되는 것 같아. 내 모든 행동과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며 말이지.. 

내가 했던 모든 것들에 회의감이 들고, 막막함과 불안함에 가슴이 먹먹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그러다가 어떻게 어떻게 위로를 받고, 다시 힘내서 살아가게 되는 거지.

 

근데, 그 이유들을 나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내가 했던 행동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면 해결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우리는 불안함과 막막함을 계속 느낄 것이고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에 갈급함을 계속 느끼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

우리는 이 삶을 살아가면서 이 공허함들을 어떻게 채워가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름 의미 있는 일들을 해가며 살아가보려고 하고, 했던 일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들을 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첫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 죽기까지 이 불안함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기에 우리는 불안함이 없는 천국을 소망한다는 거지. 그리고 천국 맛보기인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통해, 불안함들이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경험을 하며 이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인 것 같아. 기도의 시간이나 수양회의 시간 등등.

마음 속 안식 그리고 평안함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주님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우리 가정에서부터 생겼으면 좋겠어. 기본적으로 가정 예배를 통해 그 경험들을 조금씩 해가길 소망한단다.

 

두번째로는, 선한 일을 하며 우리는 견딜 수 있다는 거야. 여기서 선한 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것처럼 아무 목적 없이 하는 일을 말하는 거야. 쓸모없는 일의 쓸모라고도 하지.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특정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예를 들어 공부를 하는 것도 진로를 위한 것이고, 사람들과 원만히 지내는 것도 미래에 어떤 일이 생겼을 경우 서로 도움을 받고자 할때가 많지..

하지만, 물론 아무 목적없이 하는 일들도 있어. 아무 이유없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같은 경우처럼. 그냥 그 사람이라서 좋아하고 그 사람이라서 도와주고 싶은 관계들 말이야. 이런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원숭이보다 낫다는 말도 있어. 그리고 예술도 마찬가지지. 돈을 벌기 위한 예술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예술도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할 때 의미가 있는 거지.

 

우리가 하는 일들이 어떤 목적성이 없을 때, 그 일을 선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 보다는, 그 사람이라서 도와주는 것 처럼 말이지. 이게 같은 말인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조금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목적이 있는 일을 할 때는 그 목적이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에 불안하지만, 목적이 없는 '선'인 그 자체의 일을 할 경우에는 불안함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생각해. 그리고 목적이 없는 것 중에 하나인 가정에서의 사랑. 그 사랑을 통해 불안함에서 해방되길 기도한단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두번째 자세는

주님 안에서 불안함을 없앨 수 있는 환경을 가정에서부터 만들어주는 부모

라고 생각해. 크리스천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이렇게 진짜 만들어 가고 싶어서 글로 남긴다. 나중에 이 글을 내가 보고 그렇게 되길 소망하며 이 글을 마무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