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
| 7 | 8 | 9 | 10 | 11 | 12 | 13 |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 28 | 29 | 30 |
- 2023 겨울 수련회
- 어떻게보면 독후감
- 위러브집회말씀
- NEW ACTS
- kingdombuilder
- JOY #여름수양회 #죠이
- 너도 그저 꽃이었구나
- Chagall and the bible
- 2023
- 한성교회
- 사랑
- 육아편지
- 십자가자랑
- 공대대학원
- 김형익 목사님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소그룹상담리더십
- 선배론
- 육아 편지
- 여름수련회
- 죠이
- 최승현작가
- 박효신
- 눈물날려 그래
- 마이아트뮤지엄
- 겨울수련회
- 노진준 목사님
- 주일 말씀
- 210516 주일말씀
- 노사 세노라 도 까르모
- Today
- Total
Pensées oubliées
2022 여름 CLT (선배론) 본문
얼마전에, CLT에서 "선배론"이라는 이름 하에 나눔을 한적이 있습니다.
아는 건 없지만, 선배라는 위치에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눌때 횡설수설할까봐 대본을 적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대본을 나누고도 싶고, 기록도 하고싶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15분을 예상하고 준비해서, 읽으시는데 시간이 좀 걸릴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죠이 14학번 S라고 합니다.
저는 2020년에 학부를 졸업해서 현재는 대학원생으로 아직 학교에 조금 더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제가 한 발표 같은 것들은 전공에 관한 발표 뿐이었는데 이렇게 ‘선배론'이라는 이름 하에 나눔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떨리네요. 본격적인 나눔에 앞서서 간단한 제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제 성격을 2개의 단어로 소개하면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첫번째 단어는 회색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특히 저는 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회색과 같은 입장을 많이 취하게 됩니다.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에 위치하면서 어떻게든 갈등 상황들을 조율할 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제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특징 하나가 있고,
두번째 단어는 강함입니다. 이건 서울 죠이에서 18~19년도에 유행하던 단어였는데, 죠이 모임들에 관해서 빠지려고 하는 죠이어가 있으면, 모임에 참여하자고 독려할 때 “참여해서 강해져야지” 라는 표현을 할 때 사용하던 유행어였습니다.
이 단어와 상응하게 저는 제 몸의 한계까지 사용할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좀 더 강해지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많이 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단어로 “강함"을 골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물론 18-19년도 제팸과 여러 경험들을 통해 나의 약함을 뼈저리게 체험하였고,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들 중에 하나를 나누려고 합니다. 나누면서 회색이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에 위치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입장을 한번 취해보려고 합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명확하게 말한 적이 적어서 좀 어색하지만, 나눔을 시작해보겠습니다.
다른 캠퍼스와 다르게 서울 죠이에는 “원투원"이라는 작지만 특별한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냥 만나서 밥을 먹는 느낌의 원투원이 아니라, 한 지체와 1주일에 1번 정도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삶 나눔을 포함한 신앙적인 고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이번 나눔에서는 이 원투원 관계에서 제가 만난 하나님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선, 저랑 원투원 했던 선배는 옛날에 저한테 형이었던 현재는 간사님이신 H 간사님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 나눔의 초점은 저랑 원투원 했던 후배에 살짝 더 맞춰져 있습니다.
때는 19년도 봄이었어요. 그 때 간사님이시던 H 간사님이 저에게 후배와 원투원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고, 저는 그 때부터 한 후배를 두고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편의상 그 후배를 A라고 하겠습니다. A를 두고 기도를 하니 보이는 모습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A의 성격과 가치관 그리고 A와 원투원 관계를 통해 기대되는 영적 성장들이 보였습니다.
A의 성격은 저보다 더 시간을 정말정말 알차게 사용하는 후배이었습니다. 동아리는 5-6개를 하였고, 그래서 매일 저녁에는 서로 다른 동아리의 모임에 참여를 하는 친구였습니다. 또한, 아침에는 죠이 아침 기도회를 오고, 도서관에서 부족한 공부를 하는 친구였습니다.
그 다음에 A의 가치관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정말 깊게 생각하며,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생각하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잘 해결해 낸 죠이 내 선배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물론 제가 그 롤모델 선배가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한 기도는, 주님 과연 제가 A와 원투원 관계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였어요. A의 바쁜 일상 속에 제가 끼어들어갈 자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저와의 원투원 시간을 짐으로 느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미 A에게는 롤모델인 선배가 있는데, 저 말고 그 선배와 원투원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먼저 들더라고요.
하지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은 고민의 정답을 원하는 이 A에게, 모든 것을 다 잘 해결해내고 싶은 A에게, 다 잘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냥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이 마음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져서 A와 원투원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애초에 죠이 공동체 속에서 같이 나눔한 적이 많아서, 원투원을 시작했을 때 마음 속 고민들을 이야기하는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 다 하시는 것처럼,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같은 취미를 가지기도 했어요.
저랑 A는 헬스를 같이 하기 시작했어요. 같이하는 헬스도 좋았지만, 끝나고 같이 음료수 마시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건강하게 사는 것 같아서 뿌듯했고, A와 조금씩 더 친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고민같은건 각잡고 말하는 경우보다, 하루종일 하는 고민이라서, 그냥 만났을때 툭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A와 운동하고 음료수를 마실 때가 그때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나눠준 A의 주된 고민은 삶의 균형이었어요. 여기 계신 분들도 공감하시는 부분이겠지만, A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항상 고민하는 친구였어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하루라는 시간을 교회, 죠이, 다른 동아리, 학점 그리고 연애에 어떻게 분할해서 사용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였어요.
이런 A에게 대학이라는 자유로운 환경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가속화시키기 충분했고, 헤메는게 당연했던 것 같았어요. 이런 A에게 모든 영역을 다 챙기면서 살아가는 선배를 롤모델로 삼고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잘 몰랐어요. 성경적으로 뭐가 옳은건지도 모르겠고, 하나님을 첫째로 두는 공동체에서 깨달은 것은 많았지만,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의 관계에서 어떻게 우선순위를 두어야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제가 A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A를 만나러 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종종 있었어요. 일반적인 밥약이랑은 다르니까, 그래도 내가 선배인 입장에서 뭐라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투원 관계의 두려움에 관련해서 H 간사님과 이야기도 많이 했었고,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과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내가 기도의 힘, 하나님의 강함을 신뢰하지 않았구나. 알량한 나의 능력, 나의 지식, 나의 경험들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그러니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가 없었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담임 목사님과의 저녁 약속 전에, 30분 정도 일찍 교회 갔어요. 그랬더니, 기도하고 계시는 목사님을 보게되었습니다. 무슨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시는지는 모르지만, 한낱 저를 만나기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목사님을 보고나니, 나는 A를 만나러 가기전에 기도를 하고 갔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랬더니, A를 만나러 가는 길에 오늘은 무슨 질문이 나올까 염려하면서 머리속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기억뿐이더라고요. 참 부끄러웠습니다. 담임목사님조차 저를 만나기 전에 기도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기도는 안하고 내 능력, 나의 경험들을 의지하려고 했는지.
그 다음부터 밥약 전에는 기도를 하고 가는 습관이 길러졌고, 특히 A를 만나기전에는 더더욱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저로써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A를 만나러 가는 길이 정말 편해졌고, A와 대화를 하면서 도저히 제 머리속에서는 제 능력으로는 나올수 없는 말들이 제 입술을 통해 나오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했던 모든 말들이 제 힘으로 해낸 게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강함이었어요.
졸업 이후에 이사를 가는데, 이사를 갈 때 고려한 것들 중에 하나가 A와의 물리적 거리였어요. 가까이 있어야 그나마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졸업 후에도 이 원투원 관계를 통해 나의 약함을 계속 깨닫고, 하나님의 강함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졸업 이후에도 가끔 주말에 같이 헬스하고, 국밥먹고, 근처에서 차 한잔하는 시간들이 있었는데, 저에게는 너무너무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이 시간들이 없었다면, 졸업 이후의 저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많이 들으셨겠지만, 사회로 나가게 되면, 사람들은 정말 모든 것을 능력으로 평가해요. 회사에 가시게 되시면 실적으로 평가할 것이고, 대학원에 가시게 되면 연구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 살게 돼요. 아무리 외부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사회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여도,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능력으로 평가 받는 모습과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능력을 가지려고 달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렇게 능력으로 평가 받는 사회에 살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나의 능력을 붙잡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이 원투원 관계는 정말 소중했어요. 나의 약함과 하나님의 강함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를 통해, 사회에서도 힘을 빼야 함을 지속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된 것 같아요.
좀 더 첨언을 하자면, 우리는 예수님이 걸어오신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 자체가 예수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약해지신 것이고, 이 성육신의 사건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의 사건, 낮아짐의 사건이라는 것이죠.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마귀에게 3가지 시험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능력이 있음에도, 약해지셔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셨어요. 이처럼,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존하는 아들의 전적인 순종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것이죠.
예수님은 할 수 있으셨지만, 하지 않는 능력을 보여주신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을 할 때, 다음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새내기 친구들에게 어떤 것을 전달해야할까 고민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어떠한 새로운 길을 여셨는가를 함께 묵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강해지는 길이 아니라, 할 수 있음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너 혼자는 할 수 없다. 너는 하나님과 함께할 때만이 할 수 있다고 영적으로 가르쳐주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가정이 생길 때에도, 다음 세대인 자녀에게 흔히 말하는 “부모보다 잘 살아야한다”가 아니라, 너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에 하나님께서 힘을 살짝 보태시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약해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함으로만 완전히 채워지도록 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약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밀한 연합 관계에 있을 때, 그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온다는 것이예요. 이건 이번 여름 수양회 때에도 주강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부분인데, 하나님과의 결속, 연합을 최고로 여기며 다른 것들을 과감히 희생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우상이자 내가 믿는 구석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세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들은 열매가 아니기 때문이고, 나의 강함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눔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약함을 알게 되는 경험들을 학생시절에 하길 원해요. 그걸 학생시절에 하지못하고, 사회에 나오면 정말 힘듭니다. 내가 어중간하게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에 나와서 신앙적으로 너무나도 크게 무너질 수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아직 약함을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궁궐에 살았던 모세를 광야에 내모셔서,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갈때까지 기다리게 하신 것처럼, 그 뒤에 자기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강함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쥐워주신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힘을 뺄수 있게 도와주실 것이고, 우리의 약함 속에 하나님께서 강함으로 역사하실 줄을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가지라고 하시는
그 작은 자격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3 NEW ACTS 겨울수련회_죄 (0) | 2023.04.30 |
|---|---|
| 2023 NEW ACTS 겨울 수련회_하나님의 선하심 (0) | 2023.04.30 |
| 20220705_오늘의 기도 (0) | 2022.07.05 |
| 2022 JOY 여름 수양회_닿다 (0) | 2022.07.03 |
| 2022 JOY 여름 수양회_가다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