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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NEW ACTS 겨울 수련회_복음 본문
3. 복음
복음은 믿음의 감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는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이다.
복음의 객관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수치심을 뒤집어 쓰시고 죽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
우리를 향한 정죄는 예수님이 이미 다 받으셨고, 다 이루셨다.
이를 매일 묵상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3-1. 율법
우리는 죄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율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행동과 관련된 것이며,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율법을 통해 복음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율법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려주는 도구의 측면에서 필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알 길이 없기에, 율법이 필요하고,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부분에서부터 복음이 시작된다.
복음으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
3-2. 복음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의 역사를 예연하였습니다.
여호와(성부 하나님)께서 그(성자 하나님)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사야 53: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삼위일체의 완전한 교제를 이루고 있는 한 위격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 것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의 고난이더라도 하나님의 열정을 막을 수 없던 것입니다.
이게 어찌 "기뻐하시는 뜻" 일 수 있을까요?
율법은 우리에게 헌신해라 하는 내용이 담겨있고,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신 헌신의 선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잘 아시사, 우리를 사랑하시사, 십자가에서 확증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것도 끊을 수 없다는 것에 우리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2)
그렇게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첫번째 표적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표적입니다.
옛날에는 잔치를 엄청 길게 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잔치에 포도주는 즐거움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잔치에 포도주가 다 떨여졌고, 이는 잔치에 기쁨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그 기쁨을 회복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기쁨"을 주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적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신 겁니다.
이처럼 자신을 내어주는게 기쁘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인정하지만, 이게 엄청난 권세인지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까?
삼위일체의 완전한 교제 속에서 누리고 있는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온다는 것은 어마무시한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차원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도 눈 감아주십니다.
죄들을 모르는 척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십니다.
심지어 그 죄들을 예수님께 모두 뒤집어 쓰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3:25-26)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을 선하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실재입니다.
하지만, 힘들때마다 왜 그러시는가에 대한 질문을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할 것은 복음의 렌즈로 그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아끼시지 않으셨던 그 복음의 렌즈로 말입니다.
복음의 창으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복음의 창을 키워야 합니다.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소서.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물론, 선하심에 대한 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이 인색하셔서 우리를 도와줄 힘을 사용하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최선의 것으로 일하시고 계십니다.
내 인생에 선을 베푸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환난 중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인의 인생에는 안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3-3. 묵상
이번 수련회 말씀을 들으면서 첫번째 날부터 어려웠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인정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나도 많은 반례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반례가 반례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을 저지르는 동물입니다.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긴 하였으나, 그들이 먹지 않더라도 후손들도 계속해서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까요?
인간은 선과 악중에서 필연적으로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동물입니다.
하지말라는 것은 꼭 더 하고 싶어지죠.
그러니,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온전한 동물이 아니기에,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중에 선만을 행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창조자이자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을 누리기 원하기 때문에 창조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마지막 설교 전까지 아직 "복음"의 "ㅂ"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설교를 들을 때, 졸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설교에서 들은 "복음"은 내가 지금까지 듣고 알고 있던 "복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복음"의 크기를 내가 너무 과소평가하고 살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가늠할 수 없는 그 크기에 대해 예전에 묵상을 했겠지만, 그건 제 머리속에서는 다 지워진 상태였습니다.
현생의 바쁜일을 처리하느라 그것들을 다 잊고 살면서, 여전히 선과 악에 대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나하고 의심을 했던 겁니다.
복음의 크기는 무시한채, 눈 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그럼에도 사회 현상을 모른척하지 말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복음의 창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창은 하나님을 즐거워 함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표식으로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계속 인도하시고, 압도적인 사랑을 배푸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 사랑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드립니다. 아멘.
2023 New Acts 겨울 수련회
양천구 한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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