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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190819_예수님이 일하시는 방식

Kingdom Builder 2021. 5. 19. 23:09

<이 글은 옛날에 쓴 글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의 약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변방 나사렛의 예수로 태어나셨고, 죽음 후에 무덤이 비어 있는 것도 여인들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당시 남성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에서 그리고 성경을 안다고 말하는 바리세인들의 영향이 큰 상황에서, 예수님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사회적 약자의 편에 계셨다.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항상 동일하다.

요한복음을 보면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니고데모는 나름 고위 공무원이었고 사마리아 여인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였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직접 찾아오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5번 바뀌고, 지금도 다른 남자와 사는 것으로 묘사가 되어있다. 이것은 당시 남성 가부장적인 사회제도에서 이혼이 남자의 주도권에 있는 것을 감안하면, 남자에게 5번이나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버림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당시에 사마리아 여인 혼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감당하기 어렵기에 비참하게 또 남자에게 의존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간 것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가신 것이다. 사마리아에 가야만 했다라고 표현하는 4절 말씀처럼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후에 다른 지방으로 가신다. 사마리아에 온 것은 그 여인만을 만나기 위함이었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예배라는 자리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신다. 예수님은 시간이 남아서 할 일이 없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특별한 목적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이 힘들어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특별한 목적을 찾아오셨고, 예배가 그 만남의 사건이고, 각 사람에 대한 목적과 계획을 성취하시는 분이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계획한 것 만큼 일이 잘 안 되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내가 계획한 것은 나의 목적이지, 예수님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목적에 눈이 멀어 예수님의 그 크신 목적을 못 보고 좌절한다면 정말 슬픈 일인 것이다.

물론, 니고데모와 같이 사회적 강자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사회적 강자들은, 약자의 것을 강탈해서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지금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들이 이루어 온 것들이 자신들의 노력으로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하기 쉽고, 이 생각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온 목적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From 주일 말씀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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